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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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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갇혀있는 추억을 위한 발라드
날짜
05-08-01
등록자     줄리안 조회수 1472
작가 및
추천사이트
    모희준 추천수 0
     
 

갇혀있는 추억을 위한 발라드







모희준(medicomm@hitel.net)作







그것은 신기루 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메마른 오아시스의 환각. 그녀



와 걷던 거리는 그 일부에 불과했다. 어쩌면 내가 서른 두해 동안 꾸어



왔던 꿈의 전부 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사라졌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리석은 꿈. 나는 대신에 무지한 현실 쪽을 택했다.



어느 쪽이든 이제 그녀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



나는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닥치는 대로 소송을 걸고 끊임없이 승소를



하였다. 나에게 현실은 신의 구원이었으며 천국의 안락의자였다. 나는



현실의 충실한 개가 되어 아직도 꿈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리석



은 사람들의 냄새를 맡고 다녔다. 그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꿈의 어리



석음을 전도하고 다녔다. 그들에게 현실은 천국이며 수임료는 십일조



이고 법전은 성경이라고 설파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법원에서 구



원을 받았으며 나는 그런 그들을 동정했다. 스스로에게 고해성사를 하



며. 꿈은 사치라고.







“당신은 사냥개 같아.” 삐그덕 거리던 침대가 멈추고 3분 후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조금은 아이보리 빛이 감도는 듯한 그녀의 나체에서 익숙



한 냄새가 났다. 담배 냄새. 땀 냄새. 그리고 일부분은 환상에 불과한



욕망의 냄새.



“언제나 내 몸에서 뭔가 냄새를 맡아. 당신은 누구의 사냥개지?”



“그것이 중요해?”



“아니. 단지 호기심이야.”



“호기심은 정신건강에 별로 좋지 않아.”



“그럼 정신건강에는 뭐가 좋은데?”



“담배, 술, 돈.” 그녀가 내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었다. 잿빛의 연기사이



로 그녀의 미소가 보였다. 더럽고 추악한 미소가.





*





“쉬어가면서 하는 건 어때?” 박 선배가 매우 달고 양이 많은 인스턴트



커피를 자판기에서 뽑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박 선배가 나를 고용했으



며 나는 그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고 있었다.



“아직은 쉴 수가 없어요. 해야 할 일들이 많죠.”



“그래. 이혼 소송은 끊이지 않으니까.” 그와 나는 잠시 동안 담배만 피



웠다. 달고 맛없는 커피는 일찌감치 쓰레기통 속에 들어가 있었다.



“별로 안 좋은 소문이 돌던데.” 그가 쓰레기통 속에 들어있는 아직도 커



피가 많이 남은 종이컵에 담배를 던지면서 입을 열었다.



“어떤?”



“주변에서는 자네를 ‘사냥개’라고 하더군.”



“저를 시기하는 인간들이 지어준 멋진 별명이죠.”



“그리고 몇몇 고객과는 같이 잠자리도 했다면서?”



“그럴 수 없다는 건 선배가 더 잘 알잖아요?” 나는 발끈하지 않았다. 선



배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기에.



“단지 좀 쉬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러네. 알다시피 자네는 1년 동안



미친 듯이 일만했지. ‘그녀’가 죽은 후로는 말이지.” 선배가 자판기에 다



시 동전을 넣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나에게 커피를 권했고 나는 사양했



다.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합니다. 새로운 고객과...”



“정 변호사를 보냈네.” 선배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꺼냈다. 검은 색의 블



랙 커피였다. 그는 한 모금을 목구멍에 간신히 쑤셔 넣고 오만인상을



찌푸리면서 두 대째의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는 이유를 묻기 위해 치



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감춰야 했다. 그러나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



다는 것을 선배도, 나도 알 수 있었다.



“자네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네. 밑에는 칼날이 있지.”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자네를 쉬게 해주고 싶네. 어디 바다라도 다녀오는게 어떤가?”



“소문이 안 좋아지는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이보게. 현수. 사냥개도 주인이 있어야 사냥을 할 수 있네. 주인이 없



으면 그건 들개에 불과하지. 들개는 언젠가는 사냥을 당해. 자기가 사



냥했던 사냥개에게 말일세.” 선배는 피던 담배를 아직 커피가 남아있



는 잔에 집어넣고는 잔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검은 액체가 컵에



서 흘러 쓰레기통 속에 버려져 있는 구겨진 이면지 사이로 스며들어갔



다.



“일주일 정도 푹 쉬었다 오게.” 말을 마무리 지은 선배는 천천히 자신



의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







바람은 차갑고 날카로운 신음소리를 내며 방파제 위에 앉아있는 내 뺨



을 후려치고 있었다. 차가운 고통이 살결을 뚫고 뼈 속을 고문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앉아있었다. 해는 사라졌으며 하얀 구름의 색은 커피



에 물들어 버린 이면지처럼 점점 어두운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물방울



이 손에 튀었지만 그것이 파도 때문인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전에 사귀었던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 해줘.” 숙희가 내 손을 잡으며 입



을 열었다. 그녀의 화장품 냄새가 바다 냄새와 섞여 역겨운 향을 만들



어 냈다.



“싫어.”



“왜?”



“생각하고 싶지 않아.” 이번엔 안경테위에 물방울. 그 물방울은 천천히



안경의 렌즈를 타고 내려와 나의 오른쪽 입 언저리로 떨어졌다.



“나는 가끔 내 전 남편을 생각해.”



“어째서?”



“당신을 보면 그이가 생각이 나. 결국 당신 덕에 나는 그이랑 헤어 진



거 아냐?”



“헤어진 것이 중요한게 아니겠지.” 숙희의 웃음. 그러나 방파제에 부딪



히는 파도 소리에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손을 입에 대고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며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방파



제 구멍 사이로 침을 뱉었다.



“비가 오나 보군.” 나는 일어나려 했지만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왜 죽었지?” 이제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적지 않게 떨어지



고 있었고 파도는 방파제 안쪽 까지 들어와 우리 이야기를 엿 들으려



하고 있었다. 숙희의 검은 구두가 파도 때문에 조금 젖어 있었다. 그러



나 그녀는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



의 뺨을 갈겨 버리고 싶었다.



“왜 그녀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당신은 내 과거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까.”



“덕분에 당신에게 거액의 위자료를 선사했지. 내가 그녀에 대해서 말해



주면 당신은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 이제는 바람과 비가 섞여 옷을



조금씩 적시고 안경은 온통 물방울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숙희의 웨이



브 진 길고 숱 많은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과 빗방울에 유린당하고 있었



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이 연상이었지만 얼핏 보기에는 다섯 살은 더



많아 보였다. 눈가의 주름을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것이



눈물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몸과 위자료. 그게 다야?” 그녀의 목소리가 로렐라이의 노랫소리처



럼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파도 소리.



“그게 다야.” 파도와 방파제의 합창소리가 끝날 때 나는 대답했다. 잠



시 동안은 파도의 힘이 약해져 방파제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러나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고 파도는 그 빗줄기를 비타민 삼아 다시 방파제



와 2라운드를 펼치려고 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당신을 걸리적 거리는 존재에서 해방시



켜주었고 돈을 만지게 해줬어. 당신은 나를 원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



들였지. 뭐가 문제인데?” 숙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로 돌아



서 천천히 방파제의 구멍에 다리가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가며 걸어갔



다. 나도 그녀의 뒤를 쫓아 걸어갔다. 방파제의 구멍 따위에는 신경 쓰



지 않았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



는 액체로 얼굴이 범벅이 된 채.







*







“꿈이었을 뿐이야.” 렉서스 승용차의 속도계가 80Km를 가리키고 있을



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와이퍼는 메트로놈의 진자처럼 일정하게 움



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똑딱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차체에 부딪



히는 빗방울의 소리만이 엇박자의 불협화음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녀를 만난 건 꿈이었을 뿐이야. 나는 현실로 돌아왔고 이제는 꿈을



꾸지 않아.”



“아니. 당신은 꿈을 꾸고 있어.” 그녀는 조수석에 앉아 시선을 창밖에



둔 채 말했다. 자동차 유리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과 초점 없는 눈동



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거기다가 악몽을 꾸고 있지.”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더러운 년이라 이거지?” 나는 입을 다물고 속도를 조금 줄여 커브 길



을 돌았다. 이대로 서울로 가버릴 작정이었다.



“세상에는 당신이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



“마치 세상일을 다 안다는 듯한 말투로군.”



“그래. 더러운 년 치고는 많이 알지. 게다가 자기가 현실적이라고 믿는



사냥개 보다는 더욱더.”



“그럼 내가 모르고 당신이 알고 있는 걸 말해봐.”



“이를테면 배신이라는 거지.” 그녀는 창문을 조금 열고 담배를 꼬나물



고 불을 붙였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빗방울이 들어왔다.



“마음대로 해. 당신이 떠난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어.”



“아닐걸.”



“그럼?”



“많은 것이 변해. 주인을 잃은 사냥개라던가...”



“무슨 빌어먹을 소리를 하고 싶은 거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에 힘



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차체가 조금 흔들렸고 전방에 커브 길이 보였



다.



“나는 자기의 선배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나는 브레이크를 밟아 속



도를 조금 줄였다. 그러나 길이 미끄러워 차가 불안정했다.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다음 이야기가 그 불길함을 구



체화 시킬 것이 분명했다. 나는 조금 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넣었



다. 백미러로 뒤에 차 한대가 따라 붙는 것이 보였다.



“마지막 여흥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가면 자기 자리에는 다른 얼간이가



앉아있을 걸.”



“당신이 어떻게 장담하지? 그리고 나를 ‘자기’ 라고 부르지 마.” 뒤따라



오던 차는 나를 추월하기 위해 속도를 높였고 나도 속도를 올렸다. 백



미러에서 자동차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녀는 담배꽁초를 차창 밖으로 날렸



다.



“그러니까 당신이 어떻게 박 선배를 알고 있지?”



“그 사람이 먼저 접근해 왔어. 당신을 잘라 버리고 싶어 하더군.”



“그럴 사람이 아니야.” 백미러에 다시 자동차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20



미터 앞에 다시 커브 길이 보였지만 나는 브레이크를 밟고 싶지 않았



다.



“그래서 당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거야. 자신 만이 현실을 알고 자신 만



이 현명하다고 생각을 하지. 내 돈을 노리는 건 당신뿐만이 아니야.”



뒤 따라 오던 차는 내 바로 옆에까지 따라왔다. 상대편은 속도를 줄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 가지였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어. 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렸지.



우리 사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신의 선배뿐이야. 다른 사람은 그저



당신이 이혼녀들과 놀아나는 정도로만 알고 있거든.” 뒤따라오던 차는



기어이 나를 앞질러 갔고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나의 렉서스는 요동



을 치면서 발작을 일으켰고 울부짖었다. 차체가 반 바퀴 정도 도는 것



을 느꼈고 그녀의 어깨가 내 어깨와 부딪혔다.



“그래서?”



“게임 끝이지.”







*







내가 오래전에 그녀와 걷던 그 길가에는 낡은 카페가 있었다. 낡은 테



이블에 낡은 음악. 우리는 그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칵테일을 마시고 걸



어왔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



그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한 어느 날, 그녀는 나보다 먼저 와서 바



텐더에게 쪽지를 남겼다. 누군가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더 이상 당신



과 꿈만을 꾸는 생활은 할 수 없어. 나에게 필요한 건 현실의 행복이



야.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



다. 그리고 몇 일후 나는 그녀의 마지막 소식을 신문의 사회면에서보



았다. 어느 중소기업 회장 아들 부부의 자동차 사고. 그녀는 그렇게 사



라졌다.

나의 꿈속으로.







*





‘변호사의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 이 내가 해고당한 공식적인 이유였



다. 내 변호사 자격을 박탈시키는 것을 고려중이라는 말도 부록으로 함



께.



나는 숙희 생각이 났다. 그녀는 왜 나의 옛 애인에 대해서 물었을까? 그



녀는 그날 정말로 눈물을 흘렸을까? 그랬다면 무엇 때문에? 어쩌면 나



를 동정했을 지도 모른다. 꿈을 현실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나를.





그녀가 죽은 후로 걸어본 적이 없던 그 길을 혼자 다시 걸어보았다. 그



카페가 아직 남아 있을까? 내 발걸음이 카페가 있던 자리까지 갔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카페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예



전의 낡은 모습 그대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



시 꿈을 기억해야 하기에.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는 손잡이를 밀어 문



을 열었다. 따뜻한 공기. 석유냄새. 낡은 음악. 눈에서 흐르는 눈물. 그



리고 그 눈물 너머로 보이는 여자. 여자가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여자



에게 다가가 맞은편에 앉았다. 짙은 와인색의 짧은 머리. ‘그래비 트레



인(Gravy Train)’의 오래된 발라드 속에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옛 애인의 이야기를 해줄래?”



* 출처 : 글쟁25 - 줄리안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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