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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제도
날짜
05-07-21
등록자     거제도 조회수 4377
작가 및
추천사이트
    http://yoon2y.com.ne.kr 추천수 0
     
 

장마비가 소강상태를 이룬 틈을 타서 남도땅 거제를 간다.

멀고먼 길을 두 번 쉬고는 거제대교다. 서울, 중부고속도로,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거제 대교, 대교 건너 바로 거제 포로 수용소 견학. 오늘 날씨는 잔뜩 흐려 있는데 내일부터 비가 온다 해서 걱정이다.



경상남도 거제시.

10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섬자체 면적이 378.14 k㎡, 인구 약 20만에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제주 다음으로 큰 섬이다.



1995년에 실시된 정부의 시/군 통합정책에 따라 장승포시와 거제군이 통합되어 거제시로 바뀌었고,거제라는 이름은 클 거(巨)와 건널제로 큰 섬이라는 뜻이라 한다. 신현읍의 지붕으로 솟아오른 계룡산(564m)은 산방산, 선자산,옥녀봉, 노자산으로 이어져 긴 해안선을 따라 25km의 장대한 산군을 형성하고 종주 산행 시간은 무려 10시간에 가깝게 걸린다니 한번 올라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바다와 어울어진 절경을 보며 걸을 수 있다니 구미가 당길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거제의 제(濟)는구제할 제(濟)의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며, 임란시에는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대첩지(大捷地), 한산도를 비롯하여 옥포대첩의 유적지와 6.25 전란시 포로 수용소등으로 나라가 위경에 처했을 때 큰 몫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지금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거대한 조선소를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산업기지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 허명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런지.



또한 한려수도의 절경인 해금강을 비롯하여, 남해의 푸른 물결위에 그림같이 떠있는 섬들은 해상의 보석처럼 아름다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사람들이 거제를 찾은 이유일 것이다.



이 거제를 통하여 남해상의 아름다운 섬 매물도까지 가까워지니,매력있는 섬이다.






7/21(월)거제 포로수용소견학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이 들어찬 동지나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려져 간다.



석방 포로 이명준(李明俊)은, 오른편의 곧장 갑판으로 통한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가, 배 뒤쪽 난간에 가서, 거기에 기대어 선다.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켜댔으나 바람에 이내 꺼지고 하여, 몇 번이나 그르친 끝에,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오른팔로 얼굴을 가리고 간신히 댕긴다. 그때다. 또 그 눈이다. 배가 떠나고부터 가끔 나타나는 허깨비다. 누군가 엿보고 있다가는, 명준이 휙 돌아보면, 쑥, 숨어 버린다. 헛것인 줄 알게 되고서도 줄곧 멈추지 않는 허깨비다. 이번에는 그 눈은, 뱃간으로 들어가는 문 안쪽에서 이쪽을 지켜보다가, 명준이 고개를 들자 쑥 숨어 버린다. 얼굴이 없는 눈이다. 그때마다 그래 온 것처럼, 이번에도 잊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문득 무언가를 잊었다는 것을 깨달은 느낌이 든다. 무엇인가는 언제나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실은 아무것도 잊은 것은 없다. 그런 줄을 알며서도 이 느낌은 틀림없이 일어난다. 아주 언짢다

.............. 최인훈의 ´광장´ 중에서



전쟁 포로 이명준은 이 땅에서 삶의 광장(廣場)을 찾지 못한 채, 이념의 벽속에 갇혀 고통스러워하다 중립국으로 가는 배안에서 끝내 목숨을 버리고 만다.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 거제 포로 수용소를 들어설 무렵해서는 어두운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 낟 두 낟 지고 있다.

김여주 목사는 솔로몬의 재판을 들어 남북 분단의 잔혹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서로가 어미라 칭하는 두 거짓 어미에게 결국 아이가 반으로 나뉨을 당한 것이라고. 백범은 자신이 삼팔선을 베고 누워 죽을 지언정 분단을 용납할 수 없다 했는데, 비정한 거짓 어미는 아이를 둘로 갈라 버리고 만다.

우리의 역사에서, 우리 시대에서 진정한 지도자가 존재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동란 발발, 50년 11월부터 고현, 상동, 용산, 양정, 수월, 해명, 저산지구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하여 약 17만명을 수용하였으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후 포로수용소는 폐쇄될 때까지 제네바 협정의 사각지대에서 인권은 무참히 유린되버리고 만다. 지금은 잔존건물 일부와 전시관이 있어 당시의 정황을 짐작 하게 하나, 한 갖 헛개비에 불과한 이념의 대립으로 얼마나 많은 힘없는 백성들이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유엔군측이 포로들을 대상으로 본국으로 돌아갈 것인가의 여부에 대한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본국으로의 귀환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하여 협박 고문 살해를 자행하자 공산측 포로들은 이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 최초의 충돌은 1952년 2월 18일에 일어났다. 공산측 포로들이 더 강력했던 제62수용소 포로들이 미군의 강압적인 심사를 거부하자 미군이 발포하여 포로측 에서 77명이 사망하고 140명이 부상했으며 미군측에서는 1명 사망, 38명이 부상, 수용소 안에서 조차 이념대립으로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간의 끔찍한 유혈참극이 벌어지고 만다.



이어 3월 13일 우리나라 군경비대와 포로들이 충돌하여 포로 12명이 죽고 26명이 부상 당했으며, 또한 5월 7일 수용소 소장인 F T 도드 준장이 제76포로수용소에 납치 감금되는 사건이 발생. 얼마 후 도드준장은 미국의 잔학 행위를 인정하고 나서야 석방된다. 석방 후 그는 포로수용 소장에서 해임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사위원회에 회부되기까지 한다.



6월 13일에도 제76수용소에서 충돌이 발생하여 포로측 38명이 살해되고 195명이 부상당했으며 미군측 1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10월 1일에는 중국군 포로수용소에서 중국군 56명이 살해되고 120여 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12월 4일에는 봉암도 수용소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포로 87명이 사망하고 115명이 부상을 당한다. 1952년도 이후 이러한 크고 작은 폭동이 계속되는 중 휴전회담이 마무리 단계에 들자, 이승만 대통령은 1953. 6.18일 자정 비밀리에 유엔군이 관리하는 부산,마산 대구, 영천,논산,광주, 부평 등지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2만 7천여의 반공 포로를 석방한다.




7/22(화)

산행 사량도(蛇梁島),지리산

고성에서 통영가는 14번도로 중간 지점 쯤, 도산3거리에서 가오치항을 들어가는 조그만 포장도로가 나온다. 가오치항은 큰길에서 20여분 거리 해안가에 자리잡은 작은항구로 사량도를 오가는 카페리가 운행된다. 여름철(4월~9월)에는 오전 7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겨울철(10월~3월)에는 7시30분부터 운행된다.



사량도는 상도와 하도, 수우도 등 3개 유인도와 6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총 2683㎡의 면적에 약1000가구 3,5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사량도는 주섬인 윗섬(상도)과 아랫섬(하도)이 가까운 거리로 마주보고 있어 섬으로 둘러싸인 바다는 잔잔하며 맑고 푸른 물결이 진주빛 호수를 이룬다. 배는 윗섬 금평항으로 입항한다. 윗섬은 아랫섬보다는 작은 편이나 내륙을 가로지르는 산이 절경이다. 지리산, 불모산, 가마봉,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가히 산행인을 매료시킨다.


사량도 지리산
차창을 때리는 빗낟을 불안하게 바라보며 우리 17명 산행팀은 사량도를 향하여 떠난다. 도산에서 가오치항으로, 가오치항에 정박한 배에 오를 무렵해서 다행스럽게도 비가 그친다. 가오치항에서 금평항, 금평항에는 도착하는 카페리 시간을 맞추어 섬의 반대편 끝자락 돈지항을 왕래하는 버스가 운행한다.



지리산 등반은 바로 돈지항이 있는 돈지리에서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려 그대로 길을 따라 오르다가 산길로 접어드는 길머리에 산행리본이 많이 붙어 있는 소로로 올라 채면 산행길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돈지 초등학교 교문앞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어도 결국 같은 산행길을 만나게 된다. 지리산은 해발 398m의 육지에서 생각하면 뒷동산 정도의 낮은 산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에 걸친 장대산 지리산이 바라다보인다 하여 ´지리망산´(地異望山)이라 불리다가 그말이 줄어 ´지리산´이 됐다고 한다. 낮은 산이라는 선입견만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했다가는 호된 신고식을 치루어야 통과시켜 줄만큼 만만치 않은 산이다. 숙달된 산행인조차 오금을 저리게하는 아찔한 바위벽을 오르내려야 하는 난코스가 즐비한 산이다. 그만큼 경관 또한 수려하다.



산허리를 휘감는 운무속에 까마득한 바위벼랑,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마을의 풍경 그리고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거나 한가롭게 떠있는 고기잡이배, 지리산의 종주 코스는 지리산(398m),불모산(399m), 옥녀봉(291m)에 이르기까지 20여미터 정도의 2개의 철사다리, 밧줄타고 오르기, 수직로프사다리 등 유격훈련장을 방불케하는 스릴넘치는 산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오늘은 운무에 싸인 산길에 조망할 수 있는 경관이 가려진 것이 아쉬웠다.

산행팀은 시작은 불안했으나, 무사히 마치고 나서 성취감으로 고무되어 있었다.

등산코스 : 돈지리-지리산- 촛대바위-달바위- 가마봉- 옥녀봉- 진촌(15km 4시간30분 소요)


사량도 칠현산
하도의 유덕리에 소재하고 있는 해발 348m로서 7개의 연봉을 이루고 있다 해서 일컫게 되었으며, 칠현봉에는 등산로와 안내판이 잘 정비되어 있고 일곱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능선길이 재미있을 뿐 아니라 사방으로 탁트인 전망 또한 좋아 근래 새롭게 각광받는 등산코스가 되고 있다.

등산코스 : 덕동- 봉화대- 칠현봉- 유덕(9km, 3시간 소요)








외도(外島)

거제도를 찾는 이들의 가장인기 있는 관광코스는 외도다.
일운면 구조라항을 막고 우뚝솟은 내도와 외도는 안섬과 밖섬으로 불리어지며 내도는 여자섬이고 외도는 남자섬이라 한다. 내도는 13가구 34명이 살고 있으며, 수산업과 흑염소를 섬안에 방목하며 생활한다.



외도의 주인 이창호씨(67)와 부인 최호숙씨(65)가 27년전부터 아열대 식물을 심으며 외도를 가꿔온 사연이 ´성공시대´ 프로에까지 나오면서, 외도는 하루에도 수천명의 방문객이 찾아오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외도는 조그만 섬이다.
개발되기 전에는 고기잡이로 생업을 이어가던 어민이 살던 가난한 섬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 대마도 가까이에 있던 외도(남자섬)가 구조라 앞에 있는 내도(여자섬)를 향해 떠오는 것을 보고 놀란 아주머니가 ´섬이 떠내려 온다.´ 고 외치자 섬이 그 자리에 멈추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넓고 풍요로운 땅 내도에 비하면 외도는 깍아지는 절벽으로 둘러싸인 헐벗은 섬이었다.




1972년 이래 두 사람은 몇 차례의 실패와 난관을 극복하고 외도를 개발하여,관광 농원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하수의 굴착작업에서부터 밀감나무의 동사, 태풍에 의한 사과나무의 실패 등 실의에 빠져있던 그들은 마지막으로 해금강을 연계하는 관광지로 가꾸기 시작한다. 20여년의 각고의 노력끝에 자생 동백나무, 아열대 선인장, 병솔, 코코아 야자수, 가자니아, 선샤인, 유카리, 잎새린, 융설란 등 740여 종의 나무와 아열대 식물 등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신기한 나무를 심어 꽃과 나무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섬을 만든다. 섬은 해금강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어울어져 꿈의 낙원을 이루어 놓는다. 외도에서 바라보는 해금강, 놀이조각공원에서 노자산 너머로 지는 석양빛 등 외도는 환상과 신비의 섬으로 변모한다.



자연과 인간 힘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 낸 외도의 풍광은 보는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외도는 관광은 꽃이 만발하는 봄철이 절정을 이루고 있으나 사계절 어느 때에도 계절에 따른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겨울철에도 남도 땅의 온화한 기온으로 푸르름을 잃지않은 아열대 식물들이 따뜻한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겨주기도 한다.
동백나무와 향나무 옥향나무 밀감나무 등 갖가지 사철나무와 사람키의 두배나 되는 종려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섬, 외도는 현재 해상 관광공원으로 거제를 찾는 이들이 우선 순위에 두고 찾는 관광 1번지가 되고 있다.

거제도 외도행 유람선 선착장 : 장승포 · 구조라 · 해금강 · 와현 · 도장포 · 학동→외도





7/23(수)삼성중공업견학

거제시 신현읍 장평리일대 약 100만평의 부지에 조성된 삼성중공업(주) 거제조선소는 1977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적인 조선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3개의 도크에서 연간 180만 GT의 생산능력을 갖춘 거제조선소는 고품질의 선박건조를 비롯하여 해양설비, 교량, 철구조물 등을 생산,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거제조선소는 지금까지 300여척의 선박을 주문받아 다양한 선종을 건조했으며 그동안 축적된 풍부한 경험과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초대형 컨테이너선, LNG선, 드릴쉽등 고기술, 고부가가치 선박과 고객의 요구에 부응한 고품질 경제선형 개발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또한 해양설비사업은 원유 및 가스 정제설비, 채굴설비 등의 다양한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해양발전 플랜트, 해양목장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우리나라 조선업의 1,2,3위가 세계의 1,2,3위라 하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리고 배를 만들어 진수한 후 도크에 물빼기를 하면 따라 들어왔던 물고기가 미쳐 나가지 못하고 도크에 갇혀 잡히는 날이 있다니 그날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관 광 안 내

관광 가능일
월요일-금요일/ 주일과 휴일은 불가능

관광 시간
오전 10시- 오후 4시까지 관광 가능

전화번호
055)630-3054 / Fax : 055)630-3331

접수 방법
도착하기 2-3일전에 Fax : 055)630-4940 팩스로 내용을 미리 통보하여야 합니다.

통보 내용
-.방문일자 .방문 기간. 단체명(지역명). 인원. 관광버스명(가능시-차량번호). 담당자 연락처(핸드폰),개인적인 관광은 불가능





진주성 촉석루(矗石樓)

촉 석 루 (矗 石 樓)

임란(1592년)때, 왜장을 안고 의암에서 남강에 몸을 던진 의기(義妓) 논개로 유명한, 촉석루를 찾은 것은 마지막 일정의 오전이다. 모처럼 날씨는 활짝 개었으나 따가운 햇살에 나서기가 겁나는 한 낮이다.



진주는 진주처럼 아름다운 도시였다. 남강 둑을 따라 시내로 들어서면서 차창으로 다가서는 도시의 모습은 날씨만큼이나 청명하고 깨끗했다.

진주성 공북문(拱北門) 앞에서 내려 모두들 이른 점심을 마치고 따가운 땡볕 속을 걸어 성안으로 들어선다. 진주성, 성안은 잘 정비되어 있다 푸른 잔디가 양탄자처럼 깔린 곳에 수목들이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촉석루는 진주성 남강가 바위 벼랑위에 장엄하게 높이솟아 아름다움을 뽑낸다. 고려 말(공민왕 14, 1365년)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했으며, 성을 지키던 주장(主將)의 지휘소로 주장대(主將臺) 라고 하며 성의 남쪽에 있다하여 남장대(南將臺) 또 향시(鄕試)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장원루라고도 한다.

6.25전쟁 전까지 촉석루는 국보 제 276호로 지정 돼 있었으나 불행히도 6.25 사변때 축대만 남은 채 불타버렸고 1959년 다시 세웠다한다. 임진왜란 때 의기(義妓) 논개(論介 ?-1592 선조 25)가 촉석루 아래 남강가 의암(義岩)에서, 순국한 곳으로 더 유명하다.



누각에 올라서자 사면이 트인 누각 마루는 강바람이 불어와 더할 나위없이 시원한데 볕을 피하여 들어온 사람들로 북석이며 떠날 줄을 모른다.



논 개 (朱 論 介?-1592 선조 25)

조선조 선조때의 기생, 성은 주(朱)씨, 전북 장수(長水)태생. 진주병사(晉州兵使) 최경회(崔慶會)의 애기(愛妓). 임진왜란때 진주성이 함락되고 왜장들이 촉석루 에서 주연을 베풀고 있음을 기회로 취한 왜장 게야무라(毛谷村六助)를 끼고 벽류(碧流) 속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남강에 떨어져 순국한다.

후세에 논개의 정열(貞烈)을 찬양하여 그 바위를 의암(義岩)이라 부르고 비(碑)를 세우고 강 위에 사당(祠堂)을 세워 제(祭)를 지낸다.

<참고문헌 湖南三網錄>



의 암 (義 巖)

임진왜란 전에는 위암(危巖)이라 불리웠던 이 바위는 제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함락된 후, 왜적들의 전승 자축연에 나왔던 논개(論介)가 이 바위에서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이후 의암(義巖)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바위는 오랜 세월을 두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움직이는데 때로는 강가의 암벽 쪽으로 다가서고 때로는 강 안쪽으로 움직여 건너뛰기가 힘들 정도라 한다. 옛부터 진주시민들 사이에는 이 바위가 암벽에 와닿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의 서쪽면에는 정대룡이 논개의 충절을 기리어 새긴 ´의암(義巖)이라는 글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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