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을 나눠 주세요.
클릭~! 현재 페이지의 글을 친구에게 메일로 보내실 수 있습니다.
매일 업데이트 되는 추천 좋은글을 프린트해서 붙여보세요.
좋은글 예쁜 바탕아이콘 가져가세요
Joungul-좋은글  
 
Home | Sitemap
 
 
좋은글 검색하기
좋은글 검색 좋은글 상세검색  
좋은말,좋은말모음
속담
  - 서양속담
  - 동양속담
  - 한국속담
명언
  - 서양명언
  - 동양명언
고사성어
영화명대사
좋은글 추천메일보내기
좋은글 나누기
좋은글
좋은글이 청소년권장사이트에 선정되었습니다.
 
> 좋은말 > 고사성어
 
고사성어 고사성어
 
제목   一網打盡(일망타진)`
날짜
04-02-12
등록자     serein82 조회수 1911
  一網打盡(일망타진)`  
 


一網打盡(일망타진)

[字解]
一 :한 일
網 :그물 망
打 :칠·잡을 타
盡 :다할 진

[意義]
그물을 한 번 던져 물고기를 다 잡아버리다.
어떤 무리를 한꺼번에 죄다 잡음. 범인들을 한꺼번에 모조리 검거함.

[出典]
송사(宋史) - 인종기(仁宗紀).

[解義]
북송(北宋) 4대 황제인 인종(仁宗) 때의 일이다.
당시 북방에는 거란(契丹)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남쪽에서는 중국의 일부였던 안남(安南)이 독립을 선언하는 등 정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데도 인종은 연약 외교로 일관했다.
그러나 內治(내치)에는 괄목할 만한 치적이 적지 않았다.
전한(前漢) 5대 황제인 문제(文帝)와 더불어 어진 임금으로 이름난 인종은 백정을 사랑하고 학문을 장려했다. 그리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文治(문치)를 폄으로써 나라안이 잘 다스려졌다고 해서 이 시기를 사람들은 唐 태종의 ´정관(貞觀)의 治´에 비겨 ´경력(慶曆:인종의 연호)의 치´라고 칭송했다.

이 때의 역사적인 명신으로는 한기(韓琦)·범중엄(范仲淹)·구양수(歐陽脩)·사마광(司馬光)·주돈이(周敦이)·장재(張載)·정호(程顥)·정이(程이) 등이 있었는데, 이들이 朝議(조의)를 같이하다 보니 名論卓說(명론탁설)이 百出(백출)했고 따라서 충돌도 잦았다.
결국 朝臣(조신)이 양 당으로 나뉘어 교대로 정권을 잡게 되자 20년간에 내각이 17회나 바뀌었는데, 후세의 역사가는 이 단명 내각의 시대를 가리켜 ´경력의 당의(黨議)´라 일컫고 있다.
이 무렵, 청렴 강직하기로 이름난 두연(杜衍)이 재상이 되었다.
당시의 관행으로는 황제가 상신(相臣)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으로 조서를 내리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내강(內降)이라 했다.
그러나 두연은 이같은 관행은 올바른 정도(政道)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여 내강이 있어도 이를 묵살, 보류했다가 10여 통쯤 쌓이면 그대로 황제에게 되돌려보내곤 했다. 이러한 두연의 소행은 성지(聖旨)를 함부로 굽히는 짓이라 하여 조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마침 두연의 사위 소순흠(蘇舜欽)이 관리로서 공금을 유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반고지(反故紙)를 판 국고금으로 신(神)을 제사지내고, 관청의 손님을 초대해 기녀를 불러 주연을 베푼 사건이었다. 두연의 반대파였던 어사중승(御史中丞) 왕공진(王拱辰)이 곧 그를 탄핵하고 잡아서 취조하자 연루자가 여러 명 나왔다.

이들을 모두 하옥시킨 왕공진이 기뻐하며, “나는 한 그물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잡았다[吾一網打去盡矣].”라고 말하였다. ‘일망타진’이란 여기서 나온 말이다.
두연은 이 사건으로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오른 지 70일 만의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 말은 범인의 검거에 쓰이는 용어이다. 이 말의 이면에는 과거에는 자신의 과시 또는 완벽함이라는 자만심이 내재해 있었지만, 현대로 올수록 오히려 그 뜻이 반감되는 듯하다.

[參考]
흔히 간첩 일당을 체포했을 때 쓰는 일망타진(一網打盡)이란 말의 어원은 중국 宋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北宋 시대의 명군 인종제(仁宗帝)가 섭정하고 있을 때, 두연(杜衍)이 인종제의 독주가 못마땅해서 사사건건 반목을 일삼았다. 두연은 이렇듯 인종제에게 가장 적대적인 인물이었기에, 인종제의 신임이 두터웠던 왕공진(王拱辰)은 두연을 미워하였다.
하여 두연과 그와 가까운 인물들을 주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때마침 두연의 사위 소순흠(蘇舜欽)이 제사를 지낸다는 구실로 공금을 유용해 많은 손님을 불러들였다.
그러자 왕공진은 때는 이때다 하여 연회에 모인 모든 사람을 일망타진(一網打盡)하였다.
그러나 일망타진은 위의 고사(故事)가 적힌 『망순인전(茫純仁傳)』에서 나온 것은 아니고 고기잡는 어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간첩은 기원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엿볼 ´間´은 중국 고전 『손자(孫子)』에 보이는데 用間有五(엿보는 사람 다섯이 있다)´라고 하여 춘추시대의 치열한 첩보전 실상을 알려주고 있으며, 염탐꾼 ´諜´은 ´晉人獲秦諜(진나라 사람이 진의 첩자를 잡았다)´라 하여 『좌전(左傳)』에 보인다.
간첩이란 ´적진에 들어가 사정을 엿보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간첩을 ´세작(細作)´이라고도 하였다. 간첩은 제 5열, 스파이 등으로도 불린다. 스파이(spy)라는 말은 ´멀리서 알아보다´라는 뜻.


`

 

 


 
 
번호 제 목 작 가 조회수
122     문경지교(刎頸之交)   고사성어   2982
121     당랑거철(螳螂拒轍)   고사성어   2359
120     당랑규선 螳螂窺蟬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2645
119     塞翁之馬(새옹지마)`   고사성어   2391
118     ◈거안제미(擧案齊眉)◈ `   고사성어   2106
117     去者日疎(거자일소)   고사성어   2751
116     一網打盡(일망타진)`   고사성어   1912
115     手加車包(수가차포) `   고사성어   1713
114     椎輕釘聳(추경정용)   고사성어   1784
113     談虎虎至(담호호지)   고사성어   2781
| 198 | 199 | 200 | 201 | 202 | 203 | 204 | 205 | 206 | 207 | 바로가기 /210 페이지


고사성어 목록으로
 
 
 
Copyright ⓒ 2003 Joungul.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