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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리미야 세상을 주름 잡아라 ( 임정진 )
날짜
04-01-25
등록자     하늘 조회수 17180
     
 

제목: 다리미야, 세상을 주름잡아라 글/ 임정진 ˝뿌우우-----˝ 동물원의 아프리카 코끼리가 철창에 몸을 부딪히고 소리를 지르고 코를 휘두르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사육사는 너무나 놀라 허겁지겁 사육과장님에게 달려갔습니다. ˝무슨 일인가? 왜 코끼리가 저렇게 소리를 질러? 뭐 잘못 되었나?˝ 사육과장님도 코끼리의 고함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모래 목욕도 시켰고 물도 충분히 먹였고 사료야 늘 주던 대로 주었는데 화를 낼 이유가 없거든요.˝ ˝가만...그럼 뭔가 불만이 있는거야. 내가 가서 만나봐야지. 이럴 땐 땐 대화, 무엇보다 대화지. 암.˝ 코끼리는 사육과장을 만나자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잠깐 외출 좀 시켜주세요.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이에요.˝ ˝외출? 동물원 동물들은 외출이 금지되어 있어. 그거 모르나?˝ ˝왜요? 나는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요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도 휴가를 준다던데요?˝ ˝음...그거야 그렇지.....˝ 사육과장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코끼리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좋아, 외출증을 써주지. 하지만 어디 가려는 거지? 여긴 도시야. 네가 갈 만한 곳은 별로 없을텐데.....˝ ˝중요한 회의가 있어요. 주름협회에서.˝ 코끼리는 바쁘게 달려나갔습니다. ˝주름협회? 그게 뭐지?˝ 사육과장은 너무나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좋아, 나도 이마에 주름살 생겼으니까 거기 가입해야지. 나도 같이 가자.˝ 사육과장은 곧 코끼리 뒤를 쫓아 달려갔습니다. 넓은 광장에 주름 협회 회원들이 모였습니다. 회장은 주름치마 였습니다. 주름치마는 바람에 주름을 날리며 멋진 모습으로 서서 회원들이 들어올 때마다 인사를 했습니다. 사육과장은 주름협회 신입회원이 되려고 입회서를 한 장 받았습니다. -우리 주름협회 회원들은 주름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그 주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주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 그렇게 써있는 서류에 서명을 하면 회원으로 가입이 되는 간단한 절차였습니다. 사육과장은 코끼리의 자리에서 일부러 먼 자리에 앉았습니다. 의자는 주름이 자글자글 잡혀있는 인조 가죽 의자였습니다. ˝왜 의자에 주름이 잡혀있지요?˝ 옆에 앉은 병풍이 사육과장에게 대답했습니다. ˝신입회원이시구만요. 너무 빤질빤질한 의자는 앉으면 엉덩이가 미끄러지지요. 그래서 일부러 주름을 약간 잡아둔 거랍니다. ˝ 사육과장은 이마의 주름을 더 잘 보이게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기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아코디언도 와 있었고 접는 부채도 펄럭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주름이 있는 호스도 또아리를 틀고 의자에 앉아있었고 주름빨대도 고개를 꼬부리고 앉아 졸고 있었습니다. 사육과장은 주름이 있는 것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줄 정말 몰랐더랬습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회의를 하는 건가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적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의논하는 거에요.˝ 번데기가 자상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주름족에게 적이 있나요? ˝ 사육과장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코디언이나 병풍이나 호스나 모두 주름이 있어 자기 맡은 일을 멋지게 해내고 있는데 누가 이들을 해치려 한다는 것일까?´ ˝원래 누군가 좋은 일을 하게 되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들은 시샘하고 괜히 헐뜯고...그러는 자들이 있잖아요. 주름만 보면 못 살게 굴고 다 펴 보려고 하고.˝ ˝글쎄요.....아무리......˝ 사육과장은 가슴 속에 찔리는 게 있어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실은 20년 전 신입사원일 적에 코끼리의 주름진 등을 닦아주다가 주름 속을 닦기가 너무 힘들어 코끼리 등을 다리미로 확 다렸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와이셔츠에 주름이 조금만 있어도 부인에게 화를 냈던 적도 있었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생길까봐 거울을 볼 때마다 걱정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식순에 의하여 첫 번째로 우리 협회의 노래부터 부르겠습니다. ˝ 아코디언이 주름상자를 열심히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연주를 하고 모두들 주름찬가를 불렀습니다. 사육과장은 주름접혀 있는 악보를 펴보며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 주름이 없는 세상 상상도 할 수 없지. 좁은 곳에 큰 것을 넣으려면 주름을 잡지. 미끄러운 것을 막으려면 주름을 잡지.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주름이 생기지. 아무리 빤질빤질하던 것도 주름이 생기지. 주름 속에 숨은 지혜를 누가 알리. 작아 보여도 속은 넓은 것이 우리 주름 족. 주름잡아라, 주름잡아라, 이 세상을 주름 잡아라.- 힘찬 노래가 끝나자 주름 투성이 가죽 가방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앗, 저 가방은 내가 버린 것인데.....˝ 사육과장은 놀라서 고개를 약간 숙이고 바라보았습니다. 가죽에 주름이 잡히고 낡았다고 가방을 버린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되었습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주름족들은 늘 비웃음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단지 주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낡은 것으로 취급받고 억울하게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편견입니다. 우리 주름들은 훌륭한 일도 많이 해왔습니다. 주름이 아니라면 인류의 역사가 이렇게 발전했겠습니까? 우리 주름족을 늘 초조하게 만드는 다리미를 우리의 적으로 고발합니다. 다리미는 늘 우리 주름족들을 없애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폭력배입니다. ˝ 여기 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회장인 주름치마가 다리미를 불렀습니다. ˝다리미는 앞으로 나와주세요. 우리는 다리미의 이야기도 듣도록 하겠습니다. ˝ 다리미가 부들부들 떨며 앞으로 나왔습니다. ˝자, 그럼 다리미는 자신을 변호하는 이야기를 하실 수 있습니다. ˝ ˝저...전, 실은 주름족 편입니다. ˝ 다리미가 그렇게 말하자 여기저기서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거짓말이다. 그건 말도 안 돼.˝ ˝다리미 풀도 같이 불러야 해. 한 통속이야. 홍두깨는 요새 없나? 인두랑 홍두깨랑 다 불러서 혼내주자구. 우리 주름을 우습게 아는 자들이야. ˝ 코끼리가 주름 잔뜩 잡힌 코를 들어 콧김을 뿜으며 화를 내자 다들 흥분하여 더욱 주름을 잡으며 크게 떠들었습니다. ˝빤질빤질한 놈들, 다 혼내줘야 해. 겉멋만 잔뜩 들어서말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주름이 잡힌 음료수병은 주름이 깊은 타이어와 함께 들썩거리며 화를 냈습니다. 둘은 미끄러지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마찰군 출신입니다. 주름 치마가 주름을 휘날리며 소리쳤습니다. ˝조용히 하세요. 다리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아야지, 안 그러면 우리도 빤질족과 마찬가지인 성격이 되는 겁니다. ˝ ˝맞아맞아, 우리가 진정해야지. 이성을 찾읍시다. ˝ 우아한 주름 커튼이 일어서서 모두들 진정시키려고 애썼습니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주름을 접어가며 꿈틀꿈틀 주름 커튼 위로 기어올라갔습니다. 에벌레는 자기도 뭔가 얘기하려고 했지만 이미 다리미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어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리미는 수증기를 칙칙 뿜어가며 열심히 이야기했습니다. 주름협회에서 다리미를 잡아온 이상 오해를 풀지 못하면 다리미 밑바닥이 빨래판처럼 주름판이 될고 말 터이니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 주름을 펴는 역할도 물론 했습니다. 하지만 멋진 주름을 만드는 일을 더 많이 했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없앤 주름은 엉터리 잔주름이고 제가 잡아드린 주름은 멋진 칼주름이었다고요.˝ 다들 웅성거렸습니다. 다리미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이미 다리미를 혼내주려고 마음 먹은 터라 마음을 바꾸기가 어려웠습니다. 보다 못한 사육과장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신입회원이시지요? 말씀하세요.˝ 주름치마 회장의 허락을 받고 사육과장이 일어섰습니다. ˝전 여태까지 주름의 훌륭한 역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지내왔습니다만, 오늘 확실히 주름의 위대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과도 다른, 나만의 독특한 지문도 알고보니 손가락 끝의 주름이었습니다. ˝ ˝와---˝ 짝짝짝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신입회원이 그렇게 스스로 주름의 위대성을 깨닫다니 정말 기특하다고 주름식 물통이 옆 친구에게 수군거렸습니다. 코끼리는 사육과장을 알아보고 놀라서 쿵쾅거리며 다가오려고 애썼습니다. 주름 투성이 친구들을 밀치고 오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육과장은 코끼리가 쿵쿵거리는 것을 들으며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다리미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주름이 다 똑같은 주름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전 와이셔츠를 다려서 입고 나왔습니다. 잔주름을 깨끗이 펴고 대신 소매 중앙에, 그리고 등판에 멋진 주름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바지에도 주름을 세웠습니다. 옷을 돋보이게 하는 주름이야 말로 진정한 주름인 것입니다. 할 일이 있는 주름, 그것이 진짜 멋진 주름입니다. 다리미가 없앤 주름은 없어도 좋은 그런 주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리미를 용서합시다.˝ 사육과장의 말에 다리미는 용기를 내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 분 말이 맞아요.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구부러지기 쉽게 해주는 주름, 공간을 절약해 주름, 미끄러지지 않게 해주는 주름, 이런 주름들을 전 존경합니다. 그리고 전 아름다운 주름을 만드는 데 제 힘을 보태왔습니다. 이건 진실입니다. 그냥 빈 말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제서야 다들 주름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다리미의 말을 들어주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다리미는 조금 안심이 되어 주름치마 회장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주름 치마 회장은 회원들의 얘기를 다 듣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늘 우리 협회에서는 다리미에게 주름협회 명예회원 증을 주기로 했습니다.˝ 다리미는 정말로 기뻐했습니다. 다리미는 주름협회 명예회원이 된 기념으로 작은 주름 코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다리미 몸체와 코드가 연결되는 부분에 주름 코드를 연결하면, 코드가 여러 번 구부러지다가 꺾이는 일이 없을 겁니다.˝ 주름 빨대가 설명해주었습니다. 다리미는 주름치마 회장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앞으로 내 치마 주름이 풀어지면 다시 주름을 잡아줄텐가?˝ ˝그럼요.˝ 다리미와 주름치마 회장은 악수를 했습니다. 모두들 마음이 흐믓해져서 회의를 끝냈습니다. 사육과장은 코끼리를 타고 동물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음, 우리들이 세상을 주름잡을 날이 올거야. 우리는 마음이 아주 넉넉하게 주름잡혀 있으니까 말야. ˝ ˝맞아요. 맞아.˝ 둘은 마주보고 웃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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