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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화[동화] 훈화[동화]
 
제목   그 터 (정영길)
날짜
04-01-25
등록자     하늘 조회수 15798
     
 

<신춘문예 당선 작품>

그 터
정 영 길

우리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는 빼빼 마르고 키가 커서 장대같았다. 키재기를 한 것은 아니다. 누구도 그의 곁에 가지 못했다.
그는 우리에게 두려움이었다.
오른쪽 팔목이 돌아간 끝에 접시꽃처럼 쭉 펴진 손가락이 구부려질 줄 몰랐다. 그는 항상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다녔으며 등하교길에서 사나운 개처럼 우리를 놀래켰다. 지레 겁먹은 우리는 그의 모습이 보이기만 하면 가던 길을 되돌아서 먼 길로 갔다. 학교가는 길은 세 갈래의 길이 있다.
마을의 고개를 넘고 보리밭을 지나 변덕이 죽 끓듯한 냇물을 건너면 저만치 태극기가 펄럭이는 학교가 보였다.
우리가 즐겨 다닌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러나 그가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길목에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겁을 줄 때나 눈비가 내리는 날엔 다리가 미끄럽고 물살이 세기때문에 먼 길로 돌아갔다. 나머지 한 길은 산속을 돌아서 가는 길인데 그 길은 문둥이가 숨어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가슴을 죄이곤 했으나 여럿이 어울린 하교길엔 더없이 즐거운 길이 되었다.
봄치마 가득히 꽃을 따거나 찔레, 산딸기 혹은 산밤을 털며 토끼처럼 뛰어다니다 문득 어른들의 말씀이 떠올라 겁먹은 소리로 흩어진 친구를 불렀다.
나뭇잎 사이를 오가는 바람결에 놀라 두 귀를 세우면 그가 문둥이보다 더 무섭게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흐르는 여름, 공부를 마치고 돌아 오는 길의 냇가는 천국보다 더 아름다운 낙원이 되었다.
개구리처럼 첨벙 냇물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다보면 해님도 걸음을 멈추고 들어 앉아 반짝반짝 얼굴을 닦았다.
어느결에 나타났는지 그가 으레 그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언덕배기에서 물신령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개구리가 들끓던 연못에 돌멩이 하나 던져진 것처럼 조용해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줄행랑을 쳤다.
이만치 뛰어와 숨을 돌리면 돌위에 뻗어 논 옷가지며 책가방이 햇볕에 졸고 그는 발아래 그림자를 자꾸만 지우고 있었다. 계절은 저 혼자 가는 법 없이 우리들의 즐거움도 넉넉히 마련해 놓고 한치씩 하늘을 높여 갔다.
우리의 물놀이가 시들해질 즈음 단맛이 오른 무밭으로 놀이를 옮겼다. 앞서 가던 녀석이 발길로 길가쪽의 무를 툭치면 흙 한톨 묻지 않은 눈덩이 같은 무가 단물을 질질 흘리며 툭! 부러졌고 뒤에 오는 녀석이 자연스럽게 주웠다. 주인이 나타나거나 지나가던 어른들이 야단을 치면, 우리는 부러진 무를 주운거라고 얼레발을 쳤다.
어른들은 다 그런 때가 있었다는 듯이 알면서도 모르는 체 눈을 찔끔 감아 주었다.
손으로 잡기 좋을 만큼 무청을 자르고 손톱 끝으로 무 껍질을 벗기면 하얀 껍질이 둘둘 벗겨져 도돌도돌 매끈한 무가 군침을 돋구었다.
그 하얀 무를 한 입 베어물면 사각사각 가을 하늘 가득 단물이 괴었다. 그 즈음 가지마다 옴닥 옴닥대추가 열려 우리들의 표적이 되었던 숙영이네 대추나무에 햇살이 영글고 우리는 하교 길을 서둘렀다. 비바람이라도 부는 날은 더욱 서둘렀다.
먼저 가야 좀 굵은 알을 주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도랑에 넙죽 엎드려 대추를 주웠다. 아이들의 발에 밟혀 한풀씩 꺾여 있는 풀잎 속을 손더듬이질을 하면 큼직한 대추알이 보물처럼 손에 잡혔다. 그렇게 신이 나서 줍다보면 망을 보던 녀석까지 합세를 하고 그때마다 그는 영락없이 나타나서 주인 행세를 했다.
˝이...이...노...옴...드...을.˝
그렇게 데데하게 더듬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귀엔 주인의 또랑또랑한 불호령 소리로 들렸다. 매번 그렇게 속았다. 그때 우리는 모두 제 정신이 아니었으리라. 단숨에 언덕배기까지 도망을 치면 옷소쿠리는 풀어져 대추가 달아났다.
저만치 논둑길에 떨어진 대추를 그가 주워 모으고 있었다. 약이 오른 우리는 손나팔로 그를 놀렸다.
˝반푼이! 반푼이!˝
어떤 아이들은 그의 흉내를 내며 끼득끼득 걷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우리들 또래에서 ´나´라는 외톨이로 남겨진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빗방울이 후둑 후둑 창을 긋더니 잠시후 비둘기떼가 날개짓을 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폭풍우가 쏟아졌다. 아이들은 책가방보다 걱정보따리를 먼저 싸두었다. 한분 한분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기웃기웃 노래하는 참새들이 되어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의 부모님은 봇물을 트러 들로 나가시고 앞집의 순이 어머니께 우산을 보내셨다. 신발은 벗어들고 치마를 속옷 속에 단단히 말아 넣었다. 우산을 지팡이 삼아 동네 아주머니들 틈에 끼여 흙탕물이 폭포수처럼 넘쳐 흐르는 다리 위에 발을 내디디었다.
아차! 하는 순간 나는 빙그르 한 바퀴 돌고 물살에 떼밀려 다리 아래 움푹 패인 물구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치마는 풍선처럼 떠오르고 머리는 물귀신처럼 풀어 헤쳐졌다.
˝사람살려! 사람살려! 엄마 살려주세요?˝
소리를 치려고 입을 벌리면 물살이 먼저 소리를 먹어 치웠다. 사람들의 놀란 고함소리가 물살에 떠내려가고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나는 무언가 잡아보려고 쉼없이 허우적 거렸다. 나는 뭔가를 잡고 물위에 올라왔다.
그의 기다란 막대기였다. 그는 그의 기다란 막대기로 나를 구하고 책가방과 신발 한 짝을 용케도 건졌다.
나는 물이 줄줄 흐르는 몸으로 흙탕물 속을 떴다 가라앉았다 하며 떠내려가는 신발 한 짝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그 후로 아이들은 나와 그를 함께 묶어 놀렸다.
˝지연이 하고 반푼이 하고 좋아한대요, 시집 간대요.˝
아이들은 끼리끼리 무리져 다니고 나는 그 뒤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었다.
주인에게 야단맞은 강아지처럼 흘끔흘끔 아이들 눈치를 보며 따라가곤 했다.
˝너 반푼이 하고 시집간다며...˝
앞서가던 의순이가 돌아서서 물었다.
˝거짓말, 아 난 그런 말 한적 없어.˝
나는 얼른 침을 퇴! 퇴! 뱉고 눈썹을 뽑아 버렸다.
˝거짓말이라고 저기 호박에 쓰여 있는데......˝
˝어디-.˝
아이들은 호박덩굴이 있는 둑으로 나를 데려갔다. 푸른 호박잎을 젖히자, 누렇게 익은 커다란 호박덩이가 나왔다.
그 위에 ´우리 이 다음에 결혼하자. 정지연 반푼 씀´이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아이들은 애호박에다 낙서를 하고 주인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매일 신선한 호박잎을 따서 덮어 놓았을 것이다. 그 밤 불을 끄고 집을 나왔다. 마음 높이까지 별의 파도가 밀고 반디가 도깨비처럼 날아다녔다.
웃자란 어둠은 내 키보다 더 깊어졌다. 어떻게 호박덩굴께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늙은 호박을 찾아 호박잎을 헤쳤다. 호박잎에 앉아 울던 청개구리가 오줌을 찔끔찔끔 싸며 달아났다. 나는 얼른 호박을 따냈다.
돌덩이에 쿡쿡 호박을 찍었다. 호박씨가 별처럼 툭툭 퍼져나갔다. 시험을 본다든지 엄마가 아플 때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가 죽었을 때 다시는 남의 호박을 따지 않겠습니다.
시험을 잘 치르게 해 주세요. 엄마의 아픔을 빨리 낫게 해 주세요. 강아지를 천국으로 불러 주세요.
˝다시는 남의 호박을 따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다.
그 후 그보다 아이들이 내겐 더 큰 두려움이 되었다. 나는 혼자서 그 개울을 건너 집으로 돌아 왔다.
물을 건너다 돌다리에 엎드려 들여다보면, 내 모습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송사리 몇 마리 청청 푸른 하늘 속으로 숨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면서 읍내 학교에 입학을 했다.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가면 그가 신문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느티나무 아래나 담배가게 사랑방에서 세상 소식을 다 듣는데 신문은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구두쇠 노릇을 했지만 어머니는 그를 대견해 하며 신문을 받아 들었다.
나름대로의 은혜 갚음을 하시는 것이다.
누렁이 녀석이 먼저 그의 기척을 알고 뛰어나가 꼬리를 감추고 바지 가랑이에 매달려 발발거렸다. 나는 가끔 오이덩굴이 타내린 울타리 너머로 혹은 고드름이 녹아 내린 처마 끝에서 휘어진 팔을 고리삼아 신문을 끼고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동네 꼬마녀석들이 그를 따라 이집저집 행진을 하는 것도 보았다. 그가 신문 돌린 값으로 아이들에게 과자를 사주고 엄마의 속옷도 사드린다며 칭찬이 자자했다.
아이들도 더 이상 반푼이라고 그를 놀리지 않았다. 그러나 마을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은 냇가에서 신문돌린 값 뭐했니?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애들 과아자 사주고 울 엄니 옷 사아고. 나 짜장면 먹었다.˝
그는 입언저리며 이 사이에 짜장면 찌꺼기를 묻히고 다녔다. 봄방학에 집에 갔을 때도 그는 신문을 들고 우리집을 들락거렸다.
동네는 온통 술렁거렸다.
어떤 집은 텃밭까지 담을 쌓았고 어떤 사람은 못쓰는 삽괭이 내다보린 탈곡까지 주워 모았다. 마을이 신도시 계획에 들어간 것이다.
담을 쌓은 곳까지는 주거지로 책정되어 보상이 두 배로 나온다고 했다. 갖가지 농기구는 한 가지씩 따로따로 보상을 한다고도 했다. 동네는 술주정꾼처럼 휘청거리고 그는 열심히 신문을 돌렸다. 사람들은 신문을 기다렸다. 그의 모습을 반가워했다.
˝수고했네.˝
인삿말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도 유난히 신문을 기다리셨다. 쇠죽솥에 불을 지피시면서도 마루끝을 서너번 바라보셨다. 그런데 그가 영 나타나질 않았다.
그는 신문 돌리기를 그만두었다. 꼬마대장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들로 산으로 돌아다녔다. 발음도 정확치 않은 노래를 부르면서
˝나-의 살-던˝
그즈음 동네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텃밭에 쌓아놓은 담장이 밤마다 한 두 집씩 무너졌다. 정순이네 담장이. 다음날은 재덕이네 담장이. 그 다음날은 덕호네 담장이 무너졌다. 그리고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면에서 부쉈다는 소문, 토지개발공사 직원이 부쉈다는 소문, 조금이라고 돈을 더 받은 이웃을 배아파 하는 사람이 부쉈다는 소문이다.
그리고 등골이 오싹하는 소문도 떠돌았다. 밤마다 산제사를 지내던 산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동네 어른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회의를 했다. 밤마다 순번을 정해 보초를 서기로 했다. 그렇게 보초를 선 몇 밤이 지났다.
재너머에서 웅성웅성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흘깃흘깃 불빛이 흔들렸다.
개들이 컹컹컹 한밤의 소리를 더했다. 사람들은 언덕으로 모여들었다.
소나무 가지에 손전등을 걸어 놓고 커다란 나무 토막 끝부분에서 뭔가를 열심히 파내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몰려오자 그는 어쩌지도 못한 채 누군가에게
˝그대로 멈춰라˝
고 명령을 받은 것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입을 벌린 채 그렇게 앉아있었다.
˝네 이녀석 우리집 담장을 헌게 바로 너지 너 맞지?˝
덕호 아버지가 멱살잡이를 할 듯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재덕이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크음크음 하시며
˝녀석! 참! 슬픔을 참는 방법도 원......˝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나직이 말씀하시자 다른 어른들도 모두 고개를 숙였다.
웃저고리를 더듬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사람마다 슬픔을 삭이는 방법도 다른가 보다. 그가 어떻게 그 무거운 막대기를 베어왔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이들과 함께 산을 향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을 뿐.
그처럼 막대기 위에 눌러 앉아서 혹은 그 옆에 끼여 앉아서 조각을 하고 혹은 땅구덩이를 팠다. 햇님이 동쪽 하늘에서 환하게 웃을 때쯤 고갯길에 장승이 세워졌다.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속도로가 훤하게 뚫릴 그 길에서 우리의 등하교길을 묵묵히 지켜보던 그처럼, 아이들을 지켜볼 장승이었다. 장승의 발밑에선 봄이 어우러지는 흙내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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